역전재판6을 플레이하고 나서 대역전재판1 한글패치를 바로 플레이해봤다. 대역전재판은 역전재판의 아버지인 타쿠미 슈가 본가 시리즈에서 손을 떼고 새로 만든 시리즈로 기대를 모았다. 나루호도의 조상님인 나루호도 류노스케가 19~20세기의 세계적인 격동기의 영국을 배경으로 재판을 해나가며 성장하는 스토리이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거기다가 엄청난 것을 섞어 버렸다. 그것은 바로 세계적인 명탐정 셜록 홈즈! 나루호도는 사법 유학생이라는 설정으로 영국에서 우연히 만난 셜록 홈즈와 함께 활약하게 된다.
플레이한 소감은 솔직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일단 역전재판6을 플레이한 직후에 해서 그런지, 몇 가지 시스템의 편의성 부재가 눈에 띄었다. 이를 테면 증거물 파일에서 맨 끝의 증거에서 처음으로 돌아올 수 없는 거라던지, 증언이 끝난 후 파트너와 대화하기 전 잠깐 검은 화면이 되는 거라던지, 이런 사소한 차이들이 중간중간 몰입을 방해했다.
사건의 완성도도 좀 아쉬웠다. 과거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사건들이 대체로 단순해서 진상이 한눈에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사건들은 비밀이 몇 겹씩 싸여서 이틀에 걸친 재판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이 사건들은 너무 단순하다 보니 재판이 다 하루만에 끝난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한 번에 알 수 있는 걸 한참 뱅뱅 돌려서야 결론에 도달하는 전개가 너무 많아서 답답했다. 플레이타임 늘리기 위한 말 늘이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전 역전재판 초기작들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등장인물들의 지능이 의심됐다. 솔직히 몇 개 에피소드는 중간중간 졸면서 플레이했다.
그리고 재판 진행 과정.. 레이튼X역재에서 차용한 군중 증언은 신선한 시스템이긴 했다. 군중 증언에서만 알 수 있는 단서들도 있었고 "캐묻기"는 뭐 그냥 추궁하기의 발전형이라는 느낌으로 괜찮았다. 배심원 시스템과 <최후변론>은 처음에는 기존에 없던 위기감도 조성하고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너무 위기 해소를 배심원 제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배심원들은 6만 명의 런던 시민 중 무작위로 뽑히는 거라고 작중에 나오는데 우연히 사건현장 근처에 사는 배심원이 오고 우연히 사건의 중요한 증거에 대해 잘 아는 배심원이 있어서 그걸 토대로 재판을 해결해 나간다. 지나치게 우연성에 의존하는 전개 같아서 힘빠졌다.
게다가 가장 악명 높은 문제점 중 하나인 맥없이 끊기는 스토리. 보통 역전재판 시리즈의 에피소드 3정도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게임이 끝나 버린다. 엄청 중요한 떡밥을 엔딩 직전에 풀어버리는 게임. 영화도 너무 심하게 떡밥을 회수 안하고 끝내면 아무리 속편을 염두에 둔 거라고 해도 욕먹는다. 무슨 웹툰이나 연재 소설도 아니고 풀프라이스를 받는 게임이라면 최소한 그 작품 내에서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어줘야 한다. 문제의 대역전재판은 스토리의 완결성이 없이 속편암시만 하면서 끝난다. 평이 안 좋은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맘에 들었던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타쿠미 슈의 재능 중 하나인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으로 최소한 주연 캐릭터들은 다 호감으로 만들었다. 기존의 조력자 포지션들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치의 스사토 씨라던지, 겉보기에 허당 탐정 같지만 어느새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셜록 홈즈, 발명을 좋아하는 천재 소녀 왓슨, 그리고 변호사의 가치를 가르쳐주는 열정 스승 아소기까지 모든 캐릭터들이 매력있다. 변장과 잠입 수사를 좋아하는 형사나 맡은 피고인들은 전부 사망에 이른다는 "사신" 검사까지 개성적인 조연 캐릭터들도 많다.
특히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가 캐붕인지 아닌지로 논란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 어찌됐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엉뚱한 짓만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진실에 도달하는 명탐정이라는 느낌은 가지고 가고 있으니까. 홈즈는 재판 파트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고 조사 파트에서만 활약하는 데도 그 존재감이 크다. 물론 거기에는 "추리 극장" 시스템도 한몫 한다. 홈즈가 조사 파트에서 대뜸 뭔가를 알아냈다고 하면서 추리쇼를 펼치는데 이게 결론만 맞고 그 과정이 다 틀려먹어서 나루호도가 추리를 수정해주는 형식이다. 근데 사실 나는 이 추리 시스템은 별로 재미 없었다..ㅋㅋ
아무튼 그나마 매력적인 캐릭터들 덕분에 게임은 살아났지만 여러 가지 단점들로 좋은 평가를 하기 힘든 시리즈가 되었다. 나중에 2 한글패치가 나오면 그것까지 해보고 평가해야겠지만 현재로써는 대역전재판에 좋은 평가를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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