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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수사 RPG <디스코 엘리시움> (DISCO ELYSIUM) 클리어 후기/리뷰 (STEAM) : RPG와 결합된 SF 추리물

게임/추리 게임

by Lucill 2020. 10. 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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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코 엘리시움은 에스토니아에서 만들어진 인디 게임이다. 처음 들어보는 나라 이름인데 유럽의 한 국가라고 한다. 요즘 떠오르는 재밌는 추리 수사 RPG라고 하길래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30% 할인을 하길래 바로 구매해서 플레이했다. 레바숄이라는 쇠락한 공업 지역에서 신원 미상의 남자가 호텔 뒷마당에 목매단 채 발견된다. 플레이어는 호텔 방에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고 주변에서 자신을 형사라고 불러주는 덕분에 떠밀리듯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다른 관할서에서 살인사건 수사를 돕기 위해 파견된 킴 키츠라기 경위와 함께 둘은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더불어 자신의 무의식 아래 갇힌 기억과 정체까지 추적하게 된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지금까지 해본 게임 중 TOP 10에 들어갈 정도로 재밌었다. 일단 가장 특이한 시스템은 플레이어의 내면에 있는 여러 가지 인격들이 대화하거나 조언하는 시스템이었다. 지성, 감성, 운동 등 머리 속에서 여러 속성들이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면서 조언을 하기도 하고 특정한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설정으로 논리, 수사학, 권위, 의욕, 물리적 수단, 평정 등 24가지 성격이 있다. 게임을 시작할 때 지성파, 감정파, 운동파 중 어떤 스타일이 될지 결정할 수 있다. 특정한 성격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면 그 성격이 말하는 비중이 더 많아지고 그 속성이 필요한 행동의 성공확률도 높아진다. 그래서 같은 이벤트를 겪더라도 어떤 성격에 투자했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지와 조언들이 나오기도 한다. 특정 행동을 못한다고 해서 게임 진행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 모든 상황에 우회로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면 잠긴 문을 열 때 '물리적 수단' 포인트가 높다면 문을 강제로 열 수도 있겠지만 다른 데 투자하느라 이 수치가 낮다면 다른 곳에서 열쇠를 구해와서 문을 열면 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자유도가 굉장히 높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대사량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 대사들이 엄청나게 촘촘하게 연계된다는 것. 마치 실제 인물들과 말하는 것처럼 캐릭터들이 내가 한 말들을 기억하고 실제로 상호작용하면서 대화하는 것 같다. 이런 대화 시스템은 정말 처음 봤다. 구축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대사량이 필요했을 텐데 이걸 어떻게 구현한 것일지 신기했다. 그리고 RPG라고는 하지만 사실 대사 읽기와 선택지 고르기가 게임 플레이의 90%를 차지하기 때문에 일종의 텍스트 어드벤처라는 느낌도 받았다. 나는 텍스트 어드벤처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스타일이 좋았지만 혹시 이런 장르가 정말 불호라면 게임 진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나저나 이걸 플레이하고 나니 JRPG의 텍스트 분량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 디스코 엘리시움의 모든 텍스트를 읽어보려면 족히 5회차는 해야될 것 같다ㅋㅋ

 

 이 게임은 단순히 추리하고 수사해서 범인 잡는 게 끝이 아니라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속한 사회 구조와 정치 체제, 국가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중요한 한 파트를 이룬다. 그렇다 보니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거운 편이고 대사도 그에 맞게 깊이가 있고 찰지다. 주인공의 내면과 의식의 어둠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섬세하다. 인디 게임에서 이런 텍스트를 보다니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개발자가 소설가 출신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게임에서 한 가지 철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가진 캐릭터로 만들어갈 수 있다. 다양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자유도가 높다고 느꼈다. 추리물로써도 나쁘지 않은 스토리였다고 생각한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놀랄 만한 반전들과 사실들이 밝혀지는데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맵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의 세계는 굉장히 알차고 방대해서 며칠 동안 아주 좋은 게임을 잘 플레이했다. 이런 대사량을 깔끔하게 번역해준 번역팀에 굉장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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